피한처(避寒處)

2021. 1. 8. 23:05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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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한처 뎡뚱이와

누구나 살면서 종종 불안감과 우울감이 찾아오곤 한다. 가볍게 찾아오는 경우도, 꽤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지금의 행복이 떠나갈 것만 같은 불안감, 남들은 다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나를 갉아먹는다. 나는 이런 우울감이 나의 문제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스스로 극복하고 견뎌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름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스스로 혼자 우울을 감내하는 모습이 나는 ‘어른’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애처럼 남한테 이야기하고 민폐나 끼치는 그런 모습보다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잘못되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애써 억누른 우울들은 내 생각이나 가치관, 행동들에 커다란 자국을 남겨, 순간의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고통으로 변한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라는 사람의 평소의 모습에 우울이라는 색을 스며들게 한다. 결국 스스로 우울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우울의 웅덩이를 더 깊게 파고 들어게 할 뿐이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한명쯤 필요하다.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칠 때 잠시 추위를 잊게 해 줄 피한처(避寒處)가 말이다. 많을 필요는 없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들 때 커피라도 함께 마시자고 말해주는,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며 함께 웃어주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가만히 들어줄만한, 내 상처를 보여줄 만큼 신뢰할만한 누군가 말이다. 단지 이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위로가 된다. 캄캄한 밤에 길을 잃더라도 순간이나마 작은 등불이 되어주는, 이러한 존재들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은 어둡지 만은 않을 수 있다. 사람을 회복하고 나아가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치유되고, 치유해줄 수 있다.

 

 사람은 완벽하게 완벽하지 않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힘들고 우울한 때가 있다. 힘든 그 순간에 잠시 함께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러한 짙은 우울들을 훨씬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못난 것 같아 혼자 참고 견디지 말기를. 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고뇌하고 싸우지 않기를. 

 

당신 탓이 아니니까.

나쁜 게 아니니까.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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