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아픔이 길이 되려면

Diem 2021. 1. 2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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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문득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내 꿈은 항상 과학자나 의사, 교수, 선생님 같은 학문적인 직업군 이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사람들이 웃는걸 보는 게 좋아서.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는 나인데, 이런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만이 지금까지 너무나도 선명한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나는 원래 이런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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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역학 학자이다. 저자는 사회의 질병이라 부를만한 것들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수 있는 사회 구조를 제시 해준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 내가 느낀 저자는 성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놀라운 범위의 인류애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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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적자생존을 외치며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약하니, 도태되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사회적 척도로 타인을 평가하고 가치를 평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평가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고, 나도 쓸모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그 당시 나는 세상에 잘못된 것이 너무 많았고, 그 많은 잘못된 것 중에 내가 포함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몰아붙였을까? 이건 아마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려한 나의 노력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내가 해석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은 불편하고, 언젠간 벗어버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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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 스스로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단지 내가 내 기억 속에서 인지하는 측면의 한 모습 일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나와 많이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이미 스스로는 알고 있는데도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 같다. 이런 나는 생소하고, 인정함으로써 찾아올 변화에 따른 두려움이 공존했다. 관계중심적인 내 모습이,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 내 모습이, 그리고 그 시간들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아픈지 스스로 잘 알기에. 그런 두려움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나를 부인하게 했던 것 같다. 이러면 안된 다고, 나 답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감정은 시작되었고, 부인하고 외면한다고 없어지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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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아주 어린 아이들이 아니고서 웃음 속 숨겨진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상처들을 알아보고 보듬어주고 싶은 사람 이었나보다. 하지만 커다란 상처 일수록 그것을 보여주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편안히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라도 기다려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것 이라는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바라는 것이 진정 그 사람의 회복 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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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이 저자처럼 전 인류를 사랑할 순 없을 것이다. 나에겐 내 주변의 사람들이 훨씬 소중하고, 나에겐 그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니까. 관계에 한계가 보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나는 그 사람들을 어느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내 세상은 지구가 아닌 내 주변에 있는 내가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정말 오래간만에 책에 빠져 읽었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통계학적 수치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이나마 따듯하게 만들 수 있는 저자의 가치관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