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다.

2020. 12. 26. 23:41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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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던, 그렇기에 관계 속에서 가장 편안하고 나다울 수 있었던 사람들을 어린 시절 너무 많이 잃어 보았다. 점점 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이미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잃을 때 마다 더 혼자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사라질 때 마다 조금씩 나를 가지고 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자립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것 같다. 내 삶을 홀로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외로움이란 감정을 부인하고 능력에 집착했다. 이런 감정이나 생각들을 전부 인정하면 내가 너무 못나고 나약한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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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의 소실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통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소중한 사람은 잃으면 너무 아프니까,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관계 속에서 오는 즐거움이나 행복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감정을 너무 억누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진심으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이 성숙하고, 어른스럽고, 강인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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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를 너무 많이 외면했기에, 언제나 나를 피해 도망 다녔기에, 언제나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내 안의 자신은 너무나 나약하고 못난 존재여서 남들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 빈센트 반 고흐>

 문득, 그 당시 주변의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의 부분 부분을 만난 것 같다. 외롭지 않다고 이야기 하지만, 누구보다 외로워 보이는 나를. 혼자가 편안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가장 빛나게 웃는 순간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나를.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괴리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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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정말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별에서 오는 후회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무얼 해도 미워하지 않고 그냥 있어줄 것 같은 믿음이 있고, 그렇기에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관계. 이런 기반이 단한해지고 어른이 되면 필요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어린 시절 사랑에 길들여진 사회적 동물이었고, 무의식적으로 끝없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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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오랜 기간 동안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이 좋아질수록, 또 다시 사라지지 않을까 혼자서 불안했던 것 같다. 좋아지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관계의 기반은 언제나 두려움에 기인한 불안 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의존하고 싶지만,

이미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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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나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굉장히 사랑해서, 관계에 기반인 정서까지 들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나를 잘 알아봐 주기도 하는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 일 것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통상적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긍정적인 마음에 표현에 대한 단어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긍정적인 정서는 날카로운 부정적 정서보다 뭉뚱그려 전해지곤 한다. 하지만 내가 오늘 받은 선물은 그 어떤 언어보다 충분하게 마음이 전해졌다. 이제는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2019.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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