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2021. 1. 3. 19:30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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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챙겨주고 있는 길냥이.

 

 나는 어릴 때부터 포유류를 좋아했고,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개이다. 소형견보다는 대형견이 좋고, 특히 좋아하는 품종은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믹스'이다. 정말 매일같이 노래를 해서 중학생 시절 잘 생긴 레드 브라운 색의 암컷 허스키를 키운 적이 있다. 이름은 '치세'라고 지어줬는데, 그 당시 내가 재미있게 본 '최종병기 그녀'라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치세는 아이누어로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50일가량부터 키웠는데 정말 치세를 키우는 동안은 그 좋아하던 게임도 안 하고 치세랑 놀려고 집까지 매일 달려갔었다.

 

 치세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하는걸 꿈꿨지만, 이 행복한 시간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린다. 허스키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종인데, 개춘기에 접어들면 이 에너지는 무한에 가까워진다. 그 당시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어서 치세를 4개월쯤부터 밖에서 키웠는데 목줄을 묶어두어도 일주일을 가지 못하고 끊어먹었다. 집 뒷마당에 묶여있어야 하는 치세가 내가 대문을 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순간 목줄을 끊고 뛰어오거나, 바닥에 박아둔 못을 뽑고 달려오거나, 심지어 묶어둔 집을 썰매처럼 통째로 매달고 나에게 달려오기도 했다. 하루는 삼촌이 출근하며 깜빡하고 문을 닫지 않고 나갔는데, 치세가 문 밖으로 튀어나가 어린아이를 놀자며 덮친 것이다. 치세는 워낙 사람을 좋아했고, 친근감의 표시로 신이 나서 달려간 거였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기만 한 개가 후다다 달려와서 안기니 무서운 게 당연하다. 아이가 깜짝 놀라며 치세가 달려오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일로 부모님은 치세를 시골에 있는 사촌의 집에 보내야겠다고 한다. 나에게 결정권은 없었고, 치세를 보내는 날까지 삼 박사일 내내 울었다. 아빠는 우는 나를 보며 '나중에 내가 죽어도 저렇게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린 시절 나를 길러주셨던 이모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도 치세와 이별하는 날 만큼 울지 않았던걸 생각해 보면 아마 저 예상이 맞을 확률이 상당히 유력하다. 그 이후 시골로 내려간 치세는 목줄을 끊고 도망갔다고 했다. 

 

 치세를 보낸 이후 언제나 나중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순히 마음만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는 없고 아직까지 내가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에 쭉 기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지라도 이 친구들과의 끝을 생각하면 참 망설여질 것 같다. 대부분의 동물들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고, 우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기르는 동물이 개와 고양이일 것이다. 개나 고양이의 경우 평균 수명이 10~15년이 일반적이다. 요즘에도 길냥이에게 밥을 챙겨주시는 김영하 작가님은 '여행의 이유'에서 자신이 동물을 보살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인간의 긴 생에 '반려'라고 하기엔 15년은 너무 애닲도록 짧은 기간이라며, '여행의 동행'이 더 좋은 표현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온다. 6개월을 함께 하고 다른 곳으로 보내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흘렀는데, 15년을 함께 한 친구를 보낸다는 것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과연 그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요즘 또다시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고 여건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보니 유기견이나 유기묘 입양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의 생명을 교육하고 책임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 임을 알게 된다. 특히 강형욱 훈련사님의 유튜브를 보며 참 많이 배우고, 느끼며, 생각하는데 결국 개나 고양이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가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고, 배우고, 성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호자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보호자라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성격을 형성해 간다. 그리고 나이가 들 수록 이런 성격은 고착화된다. 보호자와 동물이 서로 감정을 공감하고, 행동을 이해하며,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결핍을 매워주면서 삶의 동행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에 요즘에는 아파트 단지에 길냥이들을 챙겨주고 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아이가 가장 눈이 많이 가는 아이인데 얼굴이 딱 봐도 앳되보이고 몸집도 작은 아기 고양이이다. 특히 얼굴이 정말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아파트 화단에서 울고 있길래 배고픈가 싶어 편의점에서 사료며 간식을 몇 번 사줬더니 다가갈 수 있는 거리도 많이 가까워지고, 도망도 잘 가지 않는다. 날이 더 추워질 것 같아 집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서식지를 몰라 눈에 띄면 밥이라도 열심히 주고 있다. 부디 따듯한 봄 까지 잘 버티고 인연이 되면 우리가 더 오랜 기간 동행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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