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4. 23:31ㆍ끄적이다

초등학교시절 의무적으로 일기를 쓴 기억이 있다. 나는 학생들 중 꽤나 일기를 잘 쓰는 학생으로 평가 받았다. 내용도 알차고, 묘사도 잘 했으며 언제나 마지막엔 느낀점을 적는 모범답안과 같은 일기를 쓰곤 했다. 그리고 이 평가는 선생님의 '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스운 일이다. 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하지만, 나를 평가하고 획일화된 기준이 있고, 피드백(선생님들은 언제나 일기를 '검사'했다는 표시를 남겨주었다.)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사회적의 암묵적인 규칙을 알아 갈 수록 일기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일기를 쓰는 숙제는 나를 숨기고 포장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치며, 나중에는 무엇이 진짜 내가 느끼는 것 인지 혼동하게 된다. 내가 진짜 느낀 감정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모범답안의 감정을 배우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사회생활'을 초등학교 때 부터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회는 비교당하고 판단당하는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세계 최초로 심리학자이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다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생각이 두가지 시스템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 한다. 하나는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1'이고, 하나는 의식적이고 노력이 필요한 '시스템2'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시스템은 끊임없이 경쟁하지만 높은 확률로 시스템1이 승리한다고 이야기 한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스템1 인 것이다. 우리 뇌는 비교하고, 판단해서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바람을 피우고 싶은 본능보다 현재의 파트너와의 신뢰를 '선택'할 수 있고, 기존에 잘못된 통념들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 그 통념의 오류를 발견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솔직해 지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솔직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솔직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모습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험이 누적된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형태는 다양한데,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비교'당하고 부정적인 '판단'을 당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부정당하는 기분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큰 공포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 일수록 이 공포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 사회에서 까지 수 많은 척도로 비교당하고 판단당하며, 종국에는 우리는 가족에게 조차 자신을 숨기고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솔직해지를 바란다면 잘 되라는 뜻으로 하는 비교나 판단보다는 지지해주고 존중해주는 믿음을 보일때 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솔직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고, 친구와 연인이 당신에게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 할 것이며, 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는 우리의 삶에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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